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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망성리 가마터에서 출토된 ‘황룡’ 기와, 황룡사의 역사와 만나다

essay9328 2025. 6. 12.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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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고대 유적지 중 하나인 망성리 가마터에서 최근 놀라운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바로 예서체로 ‘황룡(皇龍)’이라 새겨진 문자 기와입니다. 이는 경주 황룡사와 직접 연결되는 사료로, 사찰 유물 연구에 큰 획을 긋는 발견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 경주 망성리 가마터란?

망성리 가마터는 경주시 외동읍 망성리 384번지 일원에 위치한 고대 기와 생산지입니다. 이곳에서는 총 13기의 가마터가 중첩되어 발견되었으며, 일부는 아궁이와 소성실 구조가 명확히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가마 내부에는 생산 후 파손된 것으로 보이는 기와 조각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고, 이는 대량 생산 및 유통 중심지였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이번에 출토된 ‘황룡’ 문자기와는 이곳이 황룡사와 직접 연결된 공급처였음을 실증하는 귀중한 유물입니다.


🐉 출토된 ‘황룡(皇龍)’ 기와의 특징

  • 크기: 길이 17cm, 너비 15cm의 암키와 조각
  • 문자: 예서체로 ‘황룡’이라는 글자가 좌서양각(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조각됨)
  • 서체 유사성: 황룡사 남문지·강당지 등지에서 출토된 문자기와와 동일한 서체 양상

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황룡사 전용 자재로 제작된 기와였음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 황룡사란?

황룡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년) 창건을 시작해, **선덕여왕 시기(645년)**에 완성된 신라 최대의 불교 사찰입니다.

  • 위치: 경주시 구황동
  • 건축 규모: 총 82동의 건물과 중심에 높이 80척(약 66m)의 9층 목탑 존재
  • 역사적 의의: 삼국 통일의 의지를 반영한 **국찰(國刹)**로서, 정치·군사·종교의 중심지

황룡사 9층 목탑은 백제의 아비지가 설계했으며, 중국과 일본에서도 유례없는 최초의 고층 목조건축물로, 신라의 국력을 상징하는 대표 건축물이었습니다.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퇴락했으며, 몽골 침입 때 전소되었습니다.


🏺 왜 이번 발굴이 중요한가?

1. 기와 공급지 실증

기존에는 황룡사에서만 발견되던 문자기와가 외부 공급처인 망성리 가마터에서 출토된 첫 사례입니다. 이는 **황룡사에 기와를 납품하던 관요(官窯)**의 실체를 직접 증명한 사례로 학계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2. 고려 시대까지의 사용 시기 확인

문자 양각 방식과 기와 재질 분석을 통해, 이 기와는 10세기 후반 ~ 13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고려 예종 시기(1106년)의 황룡사 중창 기록과도 일치합니다.

3. 통일신라~고려로 이어지는 사찰 시스템 연결

망성리 가마터의 장기적인 운영은 황룡사뿐만 아니라 인근 사천왕사, 분황사, 궁궐 등에도 기와를 공급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로써 경주 일대의 종교·정치 인프라에 대한 공급망 구조가 보다 명확해졌습니다.


🧭 마무리: 기와 한 조각이 밝혀낸 천년의 연결고리

‘황룡’이라 새겨진 이 기와는 단순한 유물이 아닙니다.

그 속엔 신라의 꿈, 황룡사의 위엄, 그리고 고려시대까지 이어진 경주의 불교 유산이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고대 유적 하나하나가 새로운 역사의 문을 여는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경주 망성리 일대에 대한 추가 발굴과 연구가 이어져, 황룡사의 실체와 시대적 맥락이 더욱 선명해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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