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길은 도시를 삼키고 있었다.
깨진 유리조각 위로, 검은 점퍼를 입은 무리가 무표정한 얼굴로 걸어갔다.
그들의 가슴에는 하얀 십자가 마크가 박혀 있었고,
한 남자가 높이 치켜든 깃발에도 같은 표식이 흔들렸다.
"빛의 이름으로!"
"혼란을 멈춰라!"
"간첩을 처단하라!"
울리는 목소리에 맞춰, 무리들이 박자를 맞추며 전진했다.
불빛에 반사된 그들의 그림자는 괴물처럼 일그러졌다.
"저 사람들 누구야...?"
광장의 구석에서 몸을 웅크린 한 여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몰라... 시민군이 아니야."
곁에 있던 남자가 그녀를 감쌌다.
"우리 그냥 빠지자. 분위기 이상해."
그러나 늦었다.
빛의 사도단은 이미 광장의 중심을 장악하고 있었다.
몇몇 조선족 상점, 중국 대사관 주변을 향해 집단적으로 몰려갔다.
- 짝! 짝! 짝!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연달아 터졌다.
누군가 비명을 질렀지만, 다른 이들은 구경만 했다.
분노와 공포가 얽힌 침묵이었다.
"간첩이다!"
"여길 점령한 빨갱이다!"
빛의 사도단은 목청껏 외쳤다.
그 외침은 주변 사람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조선족 학생 한 명이 필사적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등 뒤로 무자비한 곤봉이 내리꽂혔다.
"멈추라고!"
"이건 아니야!"
몇몇 시민이 저항하려 했지만,
빛의 사도단은 이미 군중심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항의하는 사람들은 밀쳐지고, 짓밟혔다.
같은 시각, 용산 계엄군 지휘부
권영석 대행은 주름진 얼굴로 스크린을 바라봤다.
화면 속, 광장은 아비규환이었다.
"대사관 습격... 조선족 대상 테러... 외신은?"
그는 낮게 물었다.
참모 하나가 잽싸게 대답했다.
"이미 미국, 일본 기자들이 영상 송출했습니다. 국제사회 확산은 시간문제입니다."
"좋아."
권영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지금부터 '질서 회복'을 명분으로 움직인다.
광장의 폭력은 '외세 간첩세력'에 의한 것이다.
국가 안전보장을 위해 계엄 확대를 요청한다."
참모들은 긴장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권영석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진압은 철저하게. 증거는 남긴다.
우린 정의를 수행하는 것이다."